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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ian’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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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다리를 놓는 사람들
  • 작성자 김상옥 (KOBIC 선임연구원)
  • 작성일2025-05-11 15:02:32
  • 조회수621
  • 댓글수0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에서 바이오 데이터 수집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내에서 매우 다양한 바이오 R&D 과제들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작년 12월에 발간한 「2023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링크)」에 따르면, 정부 전체 R&D 사업 가운데 신규 과제는 26,050개, 계속 과제는 45,754개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중 생명과학 분야는 전체의 3.8%, 즉 수천 건에 달하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범부처 바이오·의료 데이터 사업만 하더라도 수십 개 이상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 연구가 아닌, 여러 기관이 참여해 국가 전략적 사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경우 ‘대형사업단’이 운영되기도 합니다. 대형사업단은 개인 과제보다 규모가 크고, 투입되는 예산도 많으며, 생산되는 데이터 역시 복잡하고 방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KOBIC은 이들 사업단과의 데이터 등록 협력을 중요한 과업 중 하나로 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투입된 대형사업단의 데이터를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K-BDS)에 연계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 연구단의 데이터를 등록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여러 차례 회의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고, 기술적 요건과 법적 해석을 동시에 검토해야 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마다 저는 KOBIC이 단순한 ‘데이터 등록기관’이 아니라, 연구자·기관·정책을 잇는 데이터 생태계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이러한 연계 작업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업 종료 시점에 이르러서야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하는 경우, 현실적인 제약들—예를 들어 데이터 관리자 부재, 법적 제한, 사업단의 소극적인 태도, 실무자 이직 등—로 인해 데이터 연계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시스템 개선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고, 근본적으로는 제도 설계와 데이터 문화에 대한 공감이 병행되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희망적인 변화의 조짐도 보입니다. 몇몇 사업에서는 과제 기획 단계에서부터 K-BDS 연계를 고려하고 있으며, 일부 신규 사업들은 공고문에 K-BDS 데이터 등록을 주요 과업으로 포함하여 선정 과정에서부터 계획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획 초기부터 데이터 연계와 활용을 염두에 두고 출발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성공적인 연계를 위해서는 사업 기간 내내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사업단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는 정해진 목적과 전략적 설계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단의 성격과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최근 데이터를 보다 활발히 활용할 수 있도록 K-BDS 게시판에 ‘등록데이터 소개(링크)’ 콘텐츠를 게시하고 있으며, 이를 K-BDS 뉴스레터(링크)와 BRIC(링크)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개인 연구 과제 또는 사업단의 데이터가 왜 만들어졌고, 어떤 방식으로 수집되었으며, 향후 어떤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연구자의 목소리로 풀어내어 생동감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BioProject와 BioSample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데이터의 사연을 접할 수 있어 한 번 더 관심이 가게 됩니다. 이는 K-BDS가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나 저장소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를 여러 연구자에게 연결하여 활용도를 높이려는 시도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실무자로서 저는 여전히 걱정이 앞섭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사업단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연계 협의를 진행하기에는 현재의 KOBIC 구조와 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많은 사업단과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연계할 수 있을까?”, “사업단마다 제각기 다른 특성과 상황을 고려해 체계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의 자원이 필요할까?”, “데이터 등록을 지원하려면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더욱 체계적인 운영 구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누군가는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잘 설계하여 새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이미 만들어진 데이터를 잘 모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데이터든 다른 연구자들에게 ‘연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다리를 놓고 이어야 합니다.

 

데이터를 등록하고 연계하는 과정은, 결국 데이터 생태계를 잇는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그 다리 위에 서 있습니다.



<다리를 놓는 사람들 KOBICians! > 
(출처: ChatGPT를 통해 생성)

KOBICian’s story는 KOBIC 멤버가 직접 작성하는 현장감 넘치는 글로서 KOBIC의 업무 방향이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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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바이오·의료 빅데이터의 폭발적 성장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방대한 임상 기록, 유전체 데이터, 건강행태 정보는 질병 예측, 맞춤형 치료, 공중보건 정책 개선을 위한 핵심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바이오데이터는 연구의 부수적 산물이 아니라, 과학 혁신의 씨앗이자 공익을 향한 사회적 자산으로 간주된다.

 

병원에 쌓여 있는 건강검진 기록, 유전자 분석결과, 임상 데이터가 한데 모이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데이터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찾고,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의 잠재적 가치만큼 활용에 대한 민감성 이슈나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다.

 

개인의 건강·생활 정보는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며, 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신뢰가 흔들릴 경우, 아무리 선의의 목적이라도 연구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은 21세기 연구윤리의 중심 과제가 되었다. 

데이터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활용되는 것과 ‘나의 자산이자 권리’라는 인식 사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으며, 오늘날 과학 연구는 이 딜레마 위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간대상 연구 또는 인체유래물 연구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반드시 충분한 설명에 기반한 자율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동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참여자가 사전에 연구목적 참여를 동의해야만 하는 옵트인(Opt-in) 방식이 있다. 권리와 자율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식이지만, 연구자 입장에서는 연구의 주제가 바뀔 때마다 매번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대규모 통합 연구나 비교연구 등에는 다소 과정과 절차가 복잡해질 수 있다.

 

둘째, 별다른 의사 표시가 없으면 참여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며, 원하지 않을 경우 동의 철회를 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이 있다. 효율성은 높지만,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자동으로 포함될 위험이 있다.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GDPR)은 원칙적으로 옵트인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익적 목적이고 개인을 식별할 수 없게 처리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옵트아웃을 허용한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연구 목적, 거부 방법, 거부 시 불이익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알리고, 철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영국의 UK Biobank는 5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건강 데이터 연구다. 처음에는 옵트인으로 참여 동의를 받고, 이후 병원 기록이나 건강 데이터 연계는 옵트아웃으로 운영한다. 참여자는 언제든 클릭 한 번으로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철회 즉시 데이터는 연구에서 빠진다. “처음에 확실히 물어보고, 이후에는 원하면 빠질 수 있게 하자”는 절충형 모델이다.

 

해외 주요국의 관련 사례를 살펴보면 같은 대상과 정보를 활용함에 있어 어떠한 제도적 설계와 신뢰 기반을 조성하는가에 따라 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2013년 진료 데이터를 추출해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통합하고, 이를 익명화하여 보건 정책 및 연구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Care.data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국민들은 건강기록이 어디에 쓰이는지, 어떻게 거부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결국 이 사업은 개인정보 보호 및 환자의 선택권 문제로 인해 2016년 중단됐다. 

2021년 새롭게 GPDPR(General Practice Data for Planning and Research) 제도를 도입하여 동의 거부 방법을 훨씬 간단하게 하고 안내를 강화했으나 안전 장치 및 신뢰 기반이 확보될 때 까지 무기한 유보 중인 상태이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전 국민의 의료기록을 국가 시스템에 자동으로 모으고, 연구에 기본적으로 활용한다. 물론 온라인으로 간단히 신청만 하면 원하는 시점에 언제든 빠질 수 있다.  이 방식이 가능했던 이유는 공공 의료 시스템에 대한 높은 신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통해 연구 참여자의 동의권을 보호하고 있으며, 옵트인 방식의 동의만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에 대규모 공익 연구를 위해 위험이 낮고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정보에 한해서 거부권을 전제로 한 옵트아웃 방식을 일부 도입할지 여부가 논의 중이다.

 

데이터 시대의 연구는 ‘공익성’과 ‘자율성’의 두 바퀴로 조화롭게 움직여야 한다. 공익을 위해 데이터 활용을 확대하되, 개인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자에게 연구 목적과 데이터 사용 범위를 설명하는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동의 철회가 쉬운 디지털 기반의 거부·철회 시스템, 독립적인 감독과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신뢰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바이오 데이터는 공익을 위한 공공재이자 필수재이지만, 개인의 권리를 경시하거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연구와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을 향한 노력은 과학의 신뢰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앞으로 우리는 “데이터의 힘”과 “개인의 권리”를 함께 지키는 ‘제3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 작성자이천무
  • 작성일2025-09-08
  • 조회수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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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개발자가 어두운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카페인 음료와 담배에 의존해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정보화사업에서는 이러한 이미지에 가까운 분야가 바로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이며, 이렇게 구축된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고 관리하는 것이 시스템 관리(SM, System Management)입니다. 두 영역 모두 개발자가 중심이 되는 사업이지요.

 

앞서 「KOBICian’s Story 24호」에서는 IT 컨설팅을 다룬 바 있습니다. IT 컨설팅이 경영 중심으로 ICT 도입 방안을 제시하는 단계라면, SI는 그 방안을 실제 전산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과정입니다. 사전적으로 SI는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소프트웨어·하드웨어·네트워크 같은 유형의 제품과 컨설팅·설계·유지보수 같은 무형 서비스를 통합하여 종합 전산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을 뜻합니다. 이는 다양한 자산들을 소프트웨어로 연결해 기업이나 기관의 환경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완성된 시스템은 전산 인프라로 활용됩니다.

 

이러한 전산시스템은 건물을 짓거나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이 대규모 인프라 구축으로 취급합니다. 따라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사업이 추진되며, 완성 후에는 감리를 통해 제대로 구축되었는지를 점검받습니다. 수억에서 수천억 원 규모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흔하고, 수십에서 수천 명의 개발자가 짧은 기간에 동시에 투입되기도 합니다.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PM(Project Manager), PL(Project Leader)과 운영지원, QA(Quality Assurance) 인력 등을 배치하며 규모에 따라 PMO(Project Management Office)까지 구성해 표준화된 방법론과 개발프레임워크를 활용합니다.

 

SI 사업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기능(function)’입니다. 특정 비즈니스 요소별로 정의된 기능의 개수와 난이도에 따라 사업비가 산정되며, 이를 FP(Function Point)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제안요청서의 기능 요구사항과 비기능 요구사항을 구분하여 개발 범위를 예측합니다. 기능은 소프트웨어 개발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의미하고, 비기능은 그 외의 요구사항을 포함합니다. 단기간에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다 보니 프리랜서 개발자도 많이 투입됩니다. 10억짜리 프로젝트에 20명이 필요한데 사업자가 회사 내 가용 인원이 15명 밖에 없다면 5명은 프리랜서 개발자를 고용합니다. 또한 사업 단계별로는 반드시 상세한 산출물 문서를 작성해야 하고, 최종 감리 단계에서는 이 산출물들이 꼼꼼히 검토됩니다. 대부분의 SI 사업은 고객사 내부 또는 근처에 마련된 대규모 임시작업장에서 합숙과 비슷한 형태로 수행됩니다. 그러나 많은 인력이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작업하다 보니 근무 환경이 열악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시스템은 이후 운영 단계로 넘어가며, 이 과정이 바로 SM 사업입니다. SM은 구축이 끝난 전산시스템을 장기간 유지·관리하는 사업으로, SI가 단기간의 과업이라면 SM은 중장기 과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업비 산정은 투입 인력 대비 기간(man/month) 기준으로 이뤄지며, 운영이 끊기지 않도록 공백 없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SM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보안 패치를 수행하고, 장애가 발생하면 복구하며, 업무 환경의 변화에 맞춰 시스템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신규 게시판을 만드는 등 소규모 요구사항까지 대응합니다. 개발자들은 고객사에 상주하며 시스템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A사 소속이지만 B사로 출근해 B사의 업무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형태가 10년 이상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프로젝트 종료 후 곧바로 다른 고객사로 재배치됩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기관에서는 SI는 외주로 맡기더라도 SM은 내부 인력으로 운영하기도 합니다.

 

조달청의 「2023 공공조달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가·공공기관의 2023년 전체 정보화사업 사업비는 6조 7,431억 원 규모이며 이 중 SI는 약 1조 8,050억 원, SM은 약 2조 9,784억 원으로 SI와 SM 사업이 전체 정보화사업 규모의 약 71%를 차지합니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과 개발자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업환경을 개선하고 있으며, 이에 전자정부 시스템의 수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전자정부 수출액은 약 5억 2,381만 달러로, 5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정보화사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SI와 SM은 정보화사업의 양대 축이자 ICT 생태계를 움직이는 핵심 분야입니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공과 민간 모두에서 디지털 혁신을 뒷받침하는 기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개발자들의 전문성과 기업들의 역량이 높아져 세계 시장에서도 한국의 정보화사업이 더욱 빛을 발하기를 기대합니다.

  • 작성자임일권
  • 작성일2025-09-01
  • 조회수99
  •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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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에 달리기에 입문하여 어느덧 13개월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달린 누적 거리는 어제 기준으로 960km를 넘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일을 중도 포기하지 않고 1년이 넘게 지속하고 있으니 이제는 달리기가 아주 수월하고 자연스런 일상이 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부풀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뛰러 나간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 오늘은 정말 뛰기 싫다! 딱 3km만 뛸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준비운동은 늘 부족하여 첫 1km를 뛰는 동안은 몸이 풀리지 않아서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러나 2km에 근접해 가면서 엔진이 예열되듯 조금씩 편안한 느낌이 들고, 어느덧 몸은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요즘 달리기가 인기 있는 운동임을 증명하듯, 지난 몇 달 동안을 관찰해 보면 확실히 동네 주변을 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마라톤 대회 신청은 순식간에 마감이 되어 국외 대회로 나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조깅과 러닝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조깅은 보통 시속 6~8km의 편안하고 느린 달리기(뛰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이고, 러닝은 시속 8km 이상으로 본인의 최대 심박수에 가깝게 운동하는 달리기라고 합니다. 페이스란 1km를 달리는데 걸리는 시간을 분으로 표현한 것으로 7분 30초보다 적어야 러닝인 셈입니다. 흔히 600 페이스, 즉 6분에 1km를 달리게 되면 초보자를 벗어난 수준이라고들 합니다. 물론 이 상태로 30분 이상을 뛸 수 있어야 합니다. 6분 페이스는 30분에 5km, 1시간에 10km에 해당하므로 계산하기도 쉽습니다.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세 시간에 달리려면, 즉 sub-3 러너가 되려면 416 페이스(4분 16초)보다 더 빨라야 합니다. 100미터를 25.6초로 세 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것이지요!


6개월 정도 달리기를 지속하면 저는 당연히 6분의 페이스로 진입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과 5월에 한번 씩 달성한 것이 유일합니다. 사실 별도의 하체 근력 운동이나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지 않는 중년 남자가 파격적으로 기록이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번 여름은 몹시 더워서인지 속도를 내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요즘은 이틀에 한 번, 640~650 페이스로 7km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 8km나 10km를 채우기도 합니다. 달리기를 계속하면 심박수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요즘은 측정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달리기가 아무런 후유증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저녁식사를 하고 2시간 이상이 지난 뒤 밤늦은 시간에 달리기를 하게 되니, 아무리 운동 후 달게 잔다 하여도 그 다음날은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만약 아침에 일어난 직후 달리기를 한다면 하루 종일 더 피곤하겠지요? 하지만 아침과 밤 언제 뛰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 밤에 뛰면 오히려 정신이 각성이 되어 깊은 잠이 들기 어려울 수 있고, 아침에는 대기 중의 공해물질이 내려와서 지표면에 가장 많이 쌓여 있을 때라고 합니다. 무릎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간혹 무릎 뒤나 장딴지가 뻐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만, 대부분 하루 쉬는 동안 나아집니다. 산화 스트레스에 의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틀에 한 차례 수 km 달리는 정도로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관절이나 근육에 누적되는 부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뛰면서 돌부리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거나 자전거 등과 충돌하지 부딛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년 전 계단에서 넘어져서 몇 개의 갈비뼈와 위팔뼈가 부러져 본 사람은, 그 아픔과 후유증을 너무나 잘 압니다. 사실 달리다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몸 두어 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난 7월의 종합건강검진에서 제 몸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내심 기대를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체중이 2kg 정도 줄고 체지방률이 3% 줄어든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근육량이 약간 늘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오히려 200g 정도 줄었더군요. 역시 추가적인 근력 운동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근손실이 많아지니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근육 운동을 하라는 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간혹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2~3년 만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말 듣고서 욕심을 내면 곤란합니다. 과도하게 높은 목표를 세우고 무리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5km나 10km 달리기 대회에 '마라톤'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붙이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하프 마라톤' 정도는 뛸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와 같이 특별히 추가적인 훈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주 이따금 10km를 뛰는 것은 가능합니다. 물론 페이스는 7분을 훌쩍 넘어가겠지요. 그러나 20km를 쉬지 않고 뛰려면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국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함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세, 건강수명은 73세라고 합니다. 즉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은 병원을 전전하거나 거동 불편을 겪으며 돌봄 대상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이 기간을 줄이려면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는 유산소 운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달리기는 아주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지요. 그러나 근육량이 줄어들지 않도록 코어와 둔근 운동도 병행해야 합니다. 꼭 클럽에 가서 '쇠질'을 하지 않아도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고 하니, 게으른 저도 방법을 찾아 봐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플랭크, 사이드 플랭크, 버드독, 브리지, 런지 등 근력운동 이름은 우리말로 바꿀 수 없을까요?


수명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만 노화는 질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병은 알약 몇 개로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운동을 포함한 좋은 생활 습관, 좋은 음식,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약 49만명에 이르는 UK Biobank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환경 요인(exposome)은 전체 사망 위험의 약 17%를 설명한 반면, 유전적 요인은 겨우 2% 미만이었다고 합니다(Integrating the environmental and genetic architectures of aging and mortalityNature Medicine, 2025; DOI: 10.1038/s41591-024-03483-9). 

 

이 연구에 대하여 덧붙인 '유전자는 주사위를 쥐여주지만, 그 주사위를 어떻게 굴릴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라는 과학자의 논평에 눈길이 갑니다(https://www.sciencemediacentre.org/expert-reaction-to-study-looking-at-genetic-and-lifestyle-factors-and-premature-death-ageing-and-age-related-diseases/). 돈이 많이 드는 유전체 연구는 물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의 건강 증진과 노화 억제'를 위해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가벼운 옷과 운동화를 신고 바깥으로 나갑시다. 신발은 600~800km를 달린 뒤 새로 사실 각오를 하시구요. 좋은 음식도 물론 중요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개념인 저속노화(서울특별시 건강총괄관 정희원 박사)에 대해서도 찾아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작성자정해영
  • 작성일2025-08-25
  • 조회수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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