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BICian’s Story

- 작성자 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4-12-30 08: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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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에서 일하면서 달리기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년 종합건강검진을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평소에 숨이 약간(또는 많이) 차게 만드는 운동 및 근력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항상 ‘아니오’라는 민망한 답을 써 오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 8월 5일부터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시설이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도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퇴근 후 주 3~4차례 달리기를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힘이 들지 늘 걱정이 됩니다. 워밍업은 매번 충분하지 않아서 출발 직후에는 몸이 무겁고 관절도 부드럽게 돌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적 드문 한밤의 갑천변 산책로를 무념무상으로 뛰다 보면 점점 몸이 더워지고, 어느덧 대략 3 km 지점의 반환점을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서 동네 입구의 아파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마치 재부팅 뒤 컴퓨터가 깨끗해지듯, 오늘 하루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온갖 스트레스와 잡념은 싹 지워집니다. 겨울밤의 추위는 별다른 방해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덥고 땀이 난다고 하여 함부로 웃옷 지퍼를 내리고 몸을 차갑게 하면, 저처럼 체온 관리에 실패하여 심한 감기에 걸려 연말까지의 달리기 계획을 모두 접어야 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의 유익함을 틈나는 대로 주변에 설파하다가 감기에 자주 걸려 체면을 많이 구겼습니다. 역시 ‘런린이’(러닝 + 어린이, 달리기 초보자)의 입방정이 문제였던 것이겠지요.
멀게만 느껴지던 일 년의 끝이 손에 잡힐 듯 겨우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신발끈을 고쳐 매듯 마음을 다잡고 KOBIC에서의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어느덧 꽤 많은 거리를 달려왔고 이제는 주변의 풍경도 여유롭게 감상할 수준이 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 차원의 걱정 말고는 특별히 신경을 쓸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쏟아지는 사안의 중대성을 재빠르게 판단하여 처리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결재 버튼을 눌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였는지, 과연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판단하였는지, 지금 내리는 결정이 조직의 책무에 부합하는지, 미래를 위한 대비는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센터장이라는 페르소나에 충실하기 위해 감정을 더욱 절제하고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하는지, 조직의 생존을 위해 외부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욱 싸움닭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도 제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물음표가 맴돌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짐을 저 혼자만 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KOBICian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큰 과오 없이 지난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과학자라고 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식의 탐구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KOBIC은 바이오 소재 정보와 데이터의 교환소, 즉 ‘장터’와 같은 곳으로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가 만족하면서 가치 교환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창고는 튼튼해야 하고, 재고 목록은 늘 제대로 업데이트되어 있어야 하며, 비가 새거나 차고 더운 바람이 들어오면 곤란하고, 때로는 차 한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쉬어 갈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느낀 KOBICian은 연구자 또는 엔지니어로서 개인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일은 잠시 내려놓고 일절 사심 없이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느끼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일상은 매주 KOBICian’s Story 원고를 매만질 때입니다. 게시할 새로운 글을 자발적으로 투고하는 것은 업무에 바쁜 KOBICian들께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각자 KOBIC 내에서 어떤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에서도 이 글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 왔을 때에는 정말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간혹 다른 글에 비하여 조회수가 월등하게 높은 글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글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지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게 됩니다. 워낙 좋은 내용으로 글을 썼고, 또한 제목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뽑았기에 외부에서 검색을 타고 유입되는 방문자가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글을 쓴 사람 자체가 KOBIC 내부에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엇, 안 그래도 평소에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도대체 무슨 글을 올렸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조회수가 올라갔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쪽이 사실이든, KOBICian 개인이 갖고 있는 원석과 같은 가치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노출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025년의 KOBICian’s Story는 3월에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KOBICian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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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에 달리기에 입문하여 어느덧 13개월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달린 누적 거리는 어제 기준으로 960km를 넘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일을 중도 포기하지 않고 1년이 넘게 지속하고 있으니 이제는 달리기가 아주 수월하고 자연스런 일상이 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부풀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뛰러 나간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 오늘은 정말 뛰기 싫다! 딱 3km만 뛸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준비운동은 늘 부족하여 첫 1km를 뛰는 동안은 몸이 풀리지 않아서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러나 2km에 근접해 가면서 엔진이 예열되듯 조금씩 편안한 느낌이 들고, 어느덧 몸은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요즘 달리기가 인기 있는 운동임을 증명하듯, 지난 몇 달 동안을 관찰해 보면 확실히 동네 주변을 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마라톤 대회 신청은 순식간에 마감이 되어 국외 대회로 나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조깅과 러닝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조깅은 보통 시속 6~8km의 편안하고 느린 달리기(뛰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이고, 러닝은 시속 8km 이상으로 본인의 최대 심박수에 가깝게 운동하는 달리기라고 합니다. 페이스란 1km를 달리는데 걸리는 시간을 분으로 표현한 것으로 7분 30초보다 적어야 러닝인 셈입니다. 흔히 600 페이스, 즉 6분에 1km를 달리게 되면 초보자를 벗어난 수준이라고들 합니다. 물론 이 상태로 30분 이상을 뛸 수 있어야 합니다. 6분 페이스는 30분에 5km, 1시간에 10km에 해당하므로 계산하기도 쉽습니다.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세 시간에 달리려면, 즉 sub-3 러너가 되려면 416 페이스(4분 16초)보다 더 빨라야 합니다. 100미터를 25.6초로 세 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것이지요!
6개월 정도 달리기를 지속하면 저는 당연히 6분의 페이스로 진입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과 5월에 한번 씩 달성한 것이 유일합니다. 사실 별도의 하체 근력 운동이나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지 않는 중년 남자가 파격적으로 기록이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번 여름은 몹시 더워서인지 속도를 내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요즘은 이틀에 한 번, 640~650 페이스로 7km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 8km나 10km를 채우기도 합니다. 달리기를 계속하면 심박수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요즘은 측정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달리기가 아무런 후유증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저녁식사를 하고 2시간 이상이 지난 뒤 밤늦은 시간에 달리기를 하게 되니, 아무리 운동 후 달게 잔다 하여도 그 다음날은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만약 아침에 일어난 직후 달리기를 한다면 하루 종일 더 피곤하겠지요? 하지만 아침과 밤 언제 뛰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 밤에 뛰면 오히려 정신이 각성이 되어 깊은 잠이 들기 어려울 수 있고, 아침에는 대기 중의 공해물질이 내려와서 지표면에 가장 많이 쌓여 있을 때라고 합니다. 무릎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간혹 무릎 뒤나 장딴지가 뻐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만, 대부분 하루 쉬는 동안 나아집니다. 산화 스트레스에 의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틀에 한 차례 수 km 달리는 정도로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관절이나 근육에 누적되는 부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뛰면서 돌부리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거나 자전거 등과 충돌하지 부딛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년 전 계단에서 넘어져서 몇 개의 갈비뼈와 위팔뼈가 부러져 본 사람은, 그 아픔과 후유증을 너무나 잘 압니다. 사실 달리다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몸 두어 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난 7월의 종합건강검진에서 제 몸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내심 기대를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체중이 2kg 정도 줄고 체지방률이 3% 줄어든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근육량이 약간 늘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오히려 200g 정도 줄었더군요. 역시 추가적인 근력 운동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근손실이 많아지니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근육 운동을 하라는 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간혹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2~3년 만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말 듣고서 욕심을 내면 곤란합니다. 과도하게 높은 목표를 세우고 무리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5km나 10km 달리기 대회에 '마라톤'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붙이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하프 마라톤' 정도는 뛸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와 같이 특별히 추가적인 훈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주 이따금 10km를 뛰는 것은 가능합니다. 물론 페이스는 7분을 훌쩍 넘어가겠지요. 그러나 20km를 쉬지 않고 뛰려면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국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함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세, 건강수명은 73세라고 합니다. 즉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은 병원을 전전하거나 거동 불편을 겪으며 돌봄 대상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이 기간을 줄이려면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는 유산소 운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달리기는 아주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지요. 그러나 근육량이 줄어들지 않도록 코어와 둔근 운동도 병행해야 합니다. 꼭 클럽에 가서 '쇠질'을 하지 않아도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고 하니, 게으른 저도 방법을 찾아 봐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플랭크, 사이드 플랭크, 버드독, 브리지, 런지 등 근력운동 이름은 우리말로 바꿀 수 없을까요?
수명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만 노화는 질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병은 알약 몇 개로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운동을 포함한 좋은 생활 습관, 좋은 음식,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약 49만명에 이르는 UK Biobank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환경 요인(exposome)은 전체 사망 위험의 약 17%를 설명한 반면, 유전적 요인은 겨우 2% 미만이었다고 합니다(Integrating the environmental and genetic architectures of aging and mortality. Nature Medicine, 2025; DOI: 10.1038/s41591-024-03483-9).
이 연구에 대하여 덧붙인 '유전자는 주사위를 쥐여주지만, 그 주사위를 어떻게 굴릴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라는 과학자의 논평에 눈길이 갑니다(https://www.sciencemediacentre.org/expert-reaction-to-study-looking-at-genetic-and-lifestyle-factors-and-premature-death-ageing-and-age-related-diseases/). 돈이 많이 드는 유전체 연구는 물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의 건강 증진과 노화 억제'를 위해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가벼운 옷과 운동화를 신고 바깥으로 나갑시다. 신발은 600~800km를 달린 뒤 새로 사실 각오를 하시구요. 좋은 음식도 물론 중요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개념인 저속노화(서울특별시 건강총괄관 정희원 박사)에 대해서도 찾아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작성자정해영
- 작성일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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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소재 다부처 회의 개최 업무와 ANRRC 간사 경험을 중심으로 ―
국제 행사를 준비하거나 다부처 회의를 진행하는 일은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정돈된 과정처럼 보입니다. 회의장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 반듯한 명패와 준비된 음료, 그리고 시간을 맞춰 들어오는 참석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오랜 준비, 복잡한 이해관계 조율,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와의 싸움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 부처와의 협력을 위한 다부처 바이오소재 중앙은행 협의회와 바이오소재 성과교류회, 그리고 아시아 생물자원센터 네트워크(Asian Network of Research Resource Centers, ANRRC)의 국제행사를 주관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행사 준비’ 이상의 일이 포함됩니다.
1. 다부처 소통: 같은 국어를 쓰지만 다른 세계
바이오소재 분야는 학문적·산업적으로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그래서 한 부처가 전담하지 않고 여러 부처가 연계해 사업을 수행합니다. 문제는 각 부처가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세부 목표나 우선순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업무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중립적이면서도 명확한 의사전달’입니다. 어느 한쪽의 용어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을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하고, 회의 전 자료를 공유해 회의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준비합니다.
2. 국제 협력: 시차보다 어려운 것은 문화차
ANRRC 간사로서 EB(Executive Board) 멤버들과 연락할 때 시차는 기본 난관입니다. 아시아권의 경우 2~3시간 차이지만, 호주처럼 낮과 밤이 완전히 반대인 경우에는 메일을 보내고 회신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것은 시차보다 문화 차이입니다. 어떤 나라는 이메일 회신이 빠르고 간결한 반면, 어떤 나라는 답변이 거의 오지 않기도 합니다. 또 회의 초대장에 단체 대표 등의 기관을 대표하는 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회신 없이 참석을 확정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관례를 존중하되, 기본 절차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각 멤버가 편한 방식으로 대응하되, 우리 내부에서는 반드시 문서 기록을 남기고 공유합니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 간 민감한 이슈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대만을 ‘Taiwan’이라고 표기해도 문제가 없지만, 회의 참석자 중 중화권이 있다면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행사 주관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국내외 행사 개최에서 가장 큰 고충은 ‘예상치 못한 상황’입니다.
한 번은 행사가 이미 시작됐는데 발표자가 자료를 전달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고, 발표자의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발표 순서를 갑자기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제 행사에서는 통역 장비나 네트워크 환경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래서 저는 발표자나 참석자들에게 항상 두세 차례 사전 연락을 합니다. 발표 자료 제출 기한을 충분히 두어 발표자가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행사 1개월 전, 1주일 전, 전날, 그리고 당일에도 가능하면 유선 연락을 취해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합니다.
그 외적으로 이와 같이 큰 규모의 행사를 치르려면 이런 전문 업체와의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아주 좁게는 음향이나 영상 장비 설치·운영만 맡길 수도 있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영역에서 관여하게 되고, 심지어 회의 분위기 조성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발표자 프롬프트 제공이나 프로그램 사이의 배경음악 준비 등과 같은 부분입니다. 또한 행사를 진행하는 초기 단계부터 행사의 분위기에 맞는 색상의 조정 및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 참여와 지원을 받아 진행합니다. 이러한 협력은 현장에서의 변수를 줄이고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렇게 변수를 줄이려 노력하더라도, 행사 당일 갑작스럽게 생기는 상황에는 여전히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4. 배운 점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행사의 성공 여부는 ‘행사 당일’이 아니라 ‘그 전의 준비 과정’에서 이미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부처 간 이해관계를 미리 조율하고, 국제 파트너와 신뢰를 쌓으며, 모든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 이것이 진짜 핵심입니다.
또한 주최 측이 항상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배웠습니. 오히려 참가자가 편안하고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하다. 결국 성공적인 회의나 행사는 ‘잘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냅니다.
5. 맺으며
앞으로도 저는 다부처와 국제 네트워크를 잇는 ‘연결자’ 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이해관계를 하나의 목표로 모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은 큽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인 경험과 노하우는 또 다른 행사와 협력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 작성자하경수
- 작성일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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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분야에서 “클러스터(Cluster)”라는 개념은 198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슈퍼컴퓨터는 고가의 전용 시스템이어서 일부 국가 기관이나 대형 연구소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더욱 정밀하고 복잡한 계산을 감당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점점 높아졌고,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고가의 슈퍼컴퓨터 대신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고안한 해결책은 바로 범용 컴퓨터 여러 대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것, 즉 클러스터 컴퓨팅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버나 워크스테이션을 여러 대 묶어 단일 고성능 시스템(슈퍼컴퓨터)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각 컴퓨터(노드)는 개별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클러스터 관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체 자원이 통합 관리되면서 하나의 연산 시스템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클러스터 시스템은 하나의 큰 계산 작업을 여러 개의 작은 단위로 나누고, 이를 여러 노드에서 동시에 처리한 뒤 결과를 종합하는 병렬 처리와 분산 처리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야 합니다.
- 작업 스케줄러(Scheduler): 어떤 작업을 어느 노드에서 언제 실행할지 결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시스템 활용도를 높입니다. Slurm, PBS, SGE(Sun Grid Engine) 등이 대표적인 스케줄러입니다.
- 고속 네트워크: 노드 간 빠른 통신은 필수적입니다. 특히 MPI(Message Passing Interface) 기반의 병렬 연산에서는 데이터 전송 속도와 지연 시간이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InfiniBand, Omni-Path, RoCE 같은 초고속 기술이 사용됩니다.
- 병렬 파일 시스템: 수많은 노드가 동시에 데이터에 접근하고 입출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Lustre, BeeGFS, IBM Spectrum Scale(GPFS) 등이 있으며, I/O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참고로 작업을 분할하고 전송한 뒤 모든 노드의 계산 완료를 기다린 후 결과물을 모으는 데에는 시간과 자원이 소모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전체 프로그램 중 90%는 병렬 처리 가능하고 10%는 직렬로만 처리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10개의 노드 사용 시 이론상 최대 속도 향상은 약 5.27배에 그친다고 합니다(Amdahl의 법칙)
Amdahl의 법칙은 전체 작업 중 병렬화가 불가능한 부분이 전체 성능 향상의 한계를 결정한다는 이론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됩니다.
Speedup(N) = 1 / (S + (1 - S)/N)
S는 직렬 처리 비율 (예: 0.1),
N은 사용한 프로세서(또는 노드) 수입니다.
클러스터 컴퓨팅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대비 성능에 있습니다. 고가의 전용 하드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범용 장비를 조합해 시스템을 구성하기 때문에 초기 구축 비용이 낮고, 유지 관리가 상대적으로 간단합니다. 또한, 필요에 따라 노드를 쉽게 추가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확장성과, 다양한 목적에 따라 자원을 유연하게 재 구성할 수 있는 유연성도 클러스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슈퍼컴퓨터와 클러스터는 모두 대규모 연산과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성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슈퍼컴퓨터는 전용으로 설계된 고성능 하드웨어와 통합된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구축되며, 시스템 전반이 일체형으로 동작하도록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반면, 클러스터는 범용 서버나 워크스테이션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하나의 연산 시스템처럼 구성하는 방식으로, 부품이나 기술의 접근성이 높고 유연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슈퍼컴퓨터 역시 내부적으로는 수천~수만 개의 노드로 구성된 클러스터 형태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범용 컴포넌트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입니다.
그 결과, 두 시스템의 물리적 구조와 운영 방식은 점점 닮아가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슈퍼컴퓨터와 클러스터의 경계가 사실상 흐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KOBIC에서는 클러스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명정보 데이터 분석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각 클러스터 노드는 최신 CPU와 대용량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어, 대규모 유전체 분석, AI 기반 모델 학습, 복잡한 생물정보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작업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노드와 스토리지는 이더넷(10/100 Mbps)이나 기가비트 이더넷(≥>1Gbps)보다 매우 빠른 최대 200 Gps의 InfiniBand와 같은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지연 시간이 매우 짧으며, 대용량 I/O 작업 환경에서도 높은 성능과 안정성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KOBIC은 방대한 생명정보 데이터를 빠르고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생명정보 연구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윤종철
- 작성일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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